BookBook-100자 서평/2022

2022 책읽기 (2) - "그 이름을 부를 때",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거야",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코딩", "황순원 단편집", "그렇게 피의자가 된다"

TommyTomTom 2022. 5. 7. 07:41

그렇게 피의자가 된다 ['22.5/5]

정경심 교수 자산관리인이 검찰 조사를 받으며 겪고 느꼈던 일들을 정리한 책.
여때껏 살아오며 검찰이라는 조직과 실제로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이 내게로 다가와 나의 모든 것을 꺼내려들고 일상을 앗아간다면.
죄 안짓고 평범하게 살면 그럴 일 없겠지 하는 생각이 항상 그렇지는 않구나 하는 의심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이 분이 당한 것이 이 정도인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힘들었고 지금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오만하고 독선적인 검찰 권력의 모습들이 앞으로는 많이 바뀌기를 바래봅니다.

 

아래는 책 속의 문장들.

'검찰 수사는 제가 그냥 느끼기에 바람이 일어야 되거든요. 뒤에서 바람을 쳐 줘야 돼요. 그런데 그 바람을 자기 스
스로 일으켜요.'
-p205

'사람이 잘못한 게 없으면 왜 구속 돼. 이런 식의 얘기들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거는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얘기고요. 그런 사람들이 들어가서 10분만 딱 조사 받으면 생각이 다 바뀔 겁니다.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 가면서 생각이 바뀔걸요 아마. 그런 말 자체를 못 해요. 걔네 검사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가 지금 어느 편에 서 있느냐에요.'
-p207


'내가 경험한 검찰은 너무 강력했고,
내가 경험한 언론은 너무 무서웠고,
내가 경험한 법원은 너무 고집적이었다.'
-p224

 


황순원 단편집 ['22.3/26]

소나기로 워낙 유명한 횡순원 작가이지만 실제 읽은 글은 교과서에 나오는 소나기, 학 정도가 전부인 듯.
얼마전 다른 책을 읽다(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선생님 글이 언급되어 있어 읽게 되었다.
단편 하나 하나가 모두 따뜻하고 인간을 품는 선생님의 시선이 느껴진다. 일부는 실제로 있었던 일과 인물들을 소재로 한 것 같기도 하다.


아래는 수록된 작품들.

- 별
- 독 짓는 늙은이
- 소나기
- 
- 곡예사
- 아버지
- 목넘이 마을의 개
- 소리 그림자
- 어머니가 있는 유월의 대화
- 차라리 내 목을
- 마지막 잔
- 나무와 돌, 그리고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코딩 ['22. 2/12]

호기심과 기대가 있었으나 읽고 난 지금은 다소 괴리감을 느낀다.
- 기대 : 의식의 흐름, 대화의 내용들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도식화할 수 있을지, 즉 눈에 보이지 않은 컨텐츠들을 어떤 방법으로 이지지들로 매핑시킬지에 대한 노하우들
- 실체(개인적, 주관적 견해임) : 다수의 분량들은 각 이미지들을 어떻게 그리는지. 툴들은 어떤 것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나 소개. 그나마 읽다보면 너무나 당연한 시시콜콜(?)한 것까지 서술하고 있는 듯.

간단히 내가 어떤 도형이나 이미지들을 예쁘게(?) 그리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그 이상은 아닌 듯.
그냥 책 제목을 '자주 쓰이는 아이콘 드로잉 가이드' 정도로 하면 어땠을까?..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22.2/13]

지난 설날 명절, 오래만에 뵙게 된 삼촌과의 인사 자리에서 나온 정치 이야기로 가족들이 결국 양 진영으로 나누어졌다.

삼촌, 숙모, 형의 파상공세에 우리 진보 진영이 깨지는 모양새였지만 속으로는 '이런 대화는 계급장 떼고 해야하는 거 아냐?'하는 억울함도 삐져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대화는 마무리되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또 '그래, 양쪽이 그렇게 쎄게 치고박은들 생각이 바뀌겠어'라고 결론을 내기도 한다.


다른 집들은 어떨까? 부모 형제 친지간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이 책이 그런 모습들을 잘 보여준다. 작가의 실제 이야기라 더 공감이 가고, 비슷한 연배에 같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어 더욱 재미있게 읽었다.
게다가 고양이까지!!!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것은 분명 좀 서글픈 일이지만 거기까지일거다. 절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냥 그렇게 서로 품고 사는거지, 뭐.

아래는 책 속의 글들.

보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엄마! 다 가짜 뉴스라니까. 그걸 진짜 믿는 사람이 있네, 있어. 그거 유튜브 같은 거 계속 보고 그러니까 지금 세뇌돼서 그러는 거 아냐!"
내 목소리가 커지자, 손 여사는 한 대 쥐어 박기라도 할 듯이 주먹을 들었다 말았다.
"이 빨갱이. 너도 큰일이다." 손 여사는 개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정치 이야기는 안하는 게 좋겠어! 이제부터 엄마랑은 절교야."
그 때 손 여사 왈, "빨갱이 좌파 고양이는 안 봐줘."
나는 잠시 어이가 없었지만, 부탁하는 입장에서 더 지를 수는 없었다.
"십만 원 먼저 줄게."
인도에 다녀올 때는 삼십 만 원을 줬었다.
"어머, 얘 봐. 그걸로 안 돼!"
물론 펄쩍 뛰는 작위적인 제스처와 표정은 덤이다.
손여사는 상황에 맞는 행동 언어가 아주 많은 편이다. "그럼 이십. 프랑스 물가가 비싸."
"알았다. 일어나자. 아빠 기다린다."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엇갈렸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원만한 합의를 끌어 냈다.
이런 게 교섭일까?
어쨌든 손여사랑은 정치적으로 절교.
-p24

나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마다 어떤 종류가 되었든 믿음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매번 원하는 만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도 세심하게 신경쓰려고 한다. 믿어주고 기억해주면 학생들은 마음을 열었다. 언제나 믿음에 화답을 해줬다.
한 명의 어른만 있어도 아이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p57


아버지가 실행되지 못할 선언을 많이 한 데 반해 손여사는 여러 가지 실천을 통해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책이었다.
손 여사는 매년 한 질의 책을 사줬다. 전집 단위로 책을 사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에는 친구들 집에 있던 오색 찬란한 동화책들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꽤 읽을 만한 책들이 많았다. 백과 사전이나 위인전, 소년 소녀 명작 전집 등이 즐비했다.
또, 내가 중학교 때에는 육성회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의 회비를 내야하는 것이 었는데 두 언니들에게는 해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손 여사는 체육 대회나 소풍 때마다 반 아이들 전체가 다 먹을 아이스크림이나 간식을 챙겨 줬다. 선생님들 도시락이나 통닭도 보내 줬다. 학급 임원의 부모는 으레 그렇게 해야했다.
-p58


손 여사는 여전히 보수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손 여사가 보수라고 해서 내가 엄마 취급을 안 할 것인가? 
손 여사 역시도 내가 진보 딸이라고 해서 딸 취급을 안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보수 부모의 돈으로 자랐다. 그 돈으로 학원에 다녔고, 책을 사 읽었다.
손 여사는 매년 몇백 권씩되는 책을 사줬고, 종이를 아끼지 않고 쓰고 그릴 수 있도록 해줬다. 지금도 여전히 손 여사는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내가 어떻게 자리를 잡을 것인지를 걱정한다.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꽤 오랫동안 나의 고양이들도 봐줬다. 어디 나가서 허풍선이가 될까봐 언제나 확실한 것만 말하라고 뼈 아픈 조언도 해준다. 그러면서도 내가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 덕에 나는 진보의 가치를 접했고, 진보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다르지만 다른 모습 그대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모두 다 손 여사 덕분이다. 
그러니 엄마, 앞으로도 나를 잘 부탁해.

-p170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거야 ['22. 2/12]

읽으며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혔다. 김복동 할머니가 당한 고통, 느꼈을 감정들, 살아오신 궤적들을 더 가까이서 보고 공감하는 듯하다.
위안부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역사의 아픔이라는 것은 머릿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이고 실
체적인 누군가의 삶으로 다가오지는 못했는데 책을 읽으며 머리와 가슴의 소통이 시작된 듯하다.
언젠가 통도사 백련암에 할머니 석등이라도 찾아봐야겠다..

아래는 책 속의 문장들.

내 뺨을 때린 것도 손이었어.
돌멩이가 아니라, 나뭇잎이 아니라. 
그 손이 시작이었어.
그리고 끝-
그 손을 잊은 적 없어.
서른 살쯤되어 보이는 일본 군의관의 손이었어.
덤불에 숨은 나를 찾아 냈어.
그리고 열 다섯 살이던 내 뺨을 때렸어.
군의관 얼굴은 기억 안 나.
나 살아있어.
-p16


내 나이가 스물 두 살이라고 했어. 집 떠날 때 열다섯 살이 었는데. 서른 두 살이라고 했어도, 마흔 두 살이라고 했어도 믿었을거야. 
엄마가 나이를 알려주었어. 엄마는 내 나이를 세고 있었 나봐, 나도 세지 않던 내 나이를.
엄마는 죽은 자식의 나이도 세는 사람이니까.
-p17,18


내가 태어난 해와 달, 날과 시로 내 전생을 찾았어.
전생에 내가 옥황 상제 딸이었대.
자식을 다 죽인 벌로 쫓겨 났대. 먼땅, 먼 땅으로 .. 
그래서 삼신 할미가 내게 자식을 주지 않는 거라고 했어.
-p20


열 다섯 살 때 머리를 잘렸어, 시모노세키에서.
일본 여자가 무쇠가위로 내 머리를 잘 랐어. 내 엄마도 아니면서. 고향 집 떠나던 날, 엄마가 내 머리를 땋아 주었어.

머리 끄트머리가 명치 쯤 왔어.
-p23


이해할 길이 없었어.
전생이 아니면, 전생에 지은 죄가 아니면, 내가 겪은 일들을.
-p29


보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눈을 잃었을까.
자정 쯤 잠이 깨, 다시 잠들지 못해.
눈을 잃고, 세상도 보고 싶지 않아졌어.
내가 모르는 사람들하고 밥 먹는 것도 싫어졌어.
나를 모르는 사람들하고.
-p32

암이 염치도 없지, 뭐 얻어 먹을 게 있다고 내 몸에 붙었을까.
밥이 먹기 싫어... 혀가 자갈처럼 굳어 아무 맛도 몰라. 내게 왜 암이 왔을까. 남 아프게 한 적 없는데 이런 고통을 받는 걸까. 나도 모르게 남 아프게 한 적 있나...
진실로,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내가 지은 죄. 
암이 오고 티브이도 안 틀어.
-p40


나는 사랑을 못 해봤어.
시시한 사랑 말고 죽고 못 사는 사랑.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 본 적 없어, 일생을.
37년을 내 옆에 그림자처럼 있었던 사람에게도 그 말을 안 했어, 못 했어. 끝까지,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어.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게 뭐야? 죽을만큼 보고 싶은 게.
사랑은 내게 그 냄새도 맡아본 적없는 과일이야. 빛깔도 본 적없는.
그래서 너는 사랑을 알아? 너는 너, 나는 나.
-p62


우리를 그곳까지 데려 간 남자가 말했어.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면 너희에게 집을 한 채씩 주겠다."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기를 바랬어.
집이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래야 집에 돌아갈 수 있는 줄 알고.
-p99


전생에 나는 어쩌자고 제비 새끼들을 죽였을까.
제비가 집에 새끼 일곱 마리를 소복이 낳아 놓았어. 
내가 빗자루로 제비 집을 쓸어 떨어뜨렸어.
제비 새끼 일곱 마리를 죽였어. 
「전생록」을 가진 할아버지가 그랬어.
그래서 그 벌로 내가 쫓겨 났어. 
먼 땅, 먼 땅으로...
-p106


저승에 가 삼신 할미가되고 싶어.
자식 못 낳아 공들이는 여자들에게 아기를 하나씩 점지해주고 싶어.
하늘 아래, 나를 엄마라고 불러 줄 아이 하나 없었어.
-p112

군인받는 공장에서 내 몸이 자라는 걸 못 느꼈어.
입던 옷이 작아져서 못 입게 되었을 때도.
그곳에서는 한 가지만 생각 했어.
오늘은 어떻게 날까, 그 생각만. 
그곳에는 오늘만 있었어, 군인들하고.
-p133


이종 형부는 알고 있었어. 일본 군인을 받는 공장에 있었다는 걸 알고도, 엄마에게 내가 간호부였다고 말했어
-p124

내가 나를 찾으려고 하니까 큰언니가 말렸어.
조카들 생각해서라도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그래도 나를 찾고 싶었어.
예순 두 살에 나를 찾으려고 신고했어.
신고하고 큰언니가 발을 끊었어.
우리 아버지, 엄마 제사 지내주는 조카들까지.
나를 찾고, 더 쓸쓸해졌어.
-p136


양산에 사배재라는 고개가 있어. 그 고개를 넘어가면 부산이야.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을 보러가는 선비들도, 사신들도, 봇짐 장수들도 그 고개를 넘어 다녔어.
사배재에서도 경찰들이 구덩이를 파놓고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였어.
부산에서도 사람을 많이 실어다 죽였어.
-p140

내가 거짓말을 했어. 일본에서 공장에 다녔다고, 한 번 결혼했다 실패했다고.
남자가 잘 생겼어. 남자 못난 건 내가 안하지. 의령에 한 번도 못 가봤어.
진짜 날 사랑 했어. 술도 못 마시고 말도 별로 없었어. 날 너무 좋아하니까 싫었어.

날 여보라고 불렀어. 내게 한 번도 화낸 적 없어, 큰소리 낸 적도.
내 과거를 모르고, 내게 늘 미안해 했어.
내 소원은 자식 하나 낳는 거.
새벽마다 찬물로 목욕하고 절에 가 불공을 드렸어.
군인받는 공장에서 보름에 한 번꼴로 맞았던 606호 주사가 불임 주사였던 걸 모르고.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내 몸이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걸 모르고.
-p144


돈이 한창 잘 벌릴 때 언니들이 나를 찾아와서 그랬어. "돈 벌어서 뭐 할래, 나 좀 주라. 너는 아무도 없지 않니." 
"너는 아무도 없지 않니."
그 말, 그 말이 나를 아무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어.
말이 무서워.
-p148


내가 남 아프게 한거 있으면 태풍이 와서 다 쓸어 가버려라..
빌고 빌어...
말로라도, 눈빛으로라도.
남 아프게 한 거 있으면.
-p181

횟수를 세 보니까 그 남자하고 37년을 살았어.
그런데도 평생 혼자 산 것만 같아. 평생 혼자, 나 혼자.
남자하고 나하고 둘이 찍은 사진이 어디 있을거야.
남자 독사진은 전부 태워 없앴어. 보고 싶지 않아서.
남자에게 끝까지 비밀로 했어, 내가 어디를 다녀 왔는지. 그 말을 어떻게 해. 그 말을 하면 안되지.
남자가 살아 있었으면 신고를 못했을거야.
바다를 떠나 오기 전까지 그 남자 제사를 지내 주었어.
내가 거짓말을 한 죄로, 제삿날 물 한 그릇 떠줄 자식 하나 못 낳아 준 죄로.
-p191


전생을 알고 나서 받아 들였어, 내 운명을.
전생이 아니고는 이해할 길이 없었어. 그래도 그 속에서 목숨만은 살아 돌아 왔어.
그리고 아흔 세 살 생일을 맞았네.

-p195


그 이름을 부를 때 ['22.2/6]

'김복동' 영화를 본 지도 시간이 꽤 흘렀고 당시의 기억들도 아스라하게 옅어지고 있다. 그저 한편의 기록 영화로 남겠거니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 만드는 과정을 전하는 책이 나왔다고 하여 일종의 의무감(?)으로 읽게 되었다.

영화를 통해 할머니에게서 받은 인상은 어쩌면 일본 정부와 싸우는 운동가의 면이 강했던 것 같은데 책을 읽으면서는 자신이 겪은 고통들을 더 이상 남들은 겪지 않게 하려는 인간적인 면모들이 크게 다가오는 듯 하다.
영화와 더불어 책도 우리 근대사의 기록으로 오래 오래 보여지고 읽혔으면 좋겠다. 작가님도 어서 쾌유하시어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진심 바래본다.

아래는 책 속의 문장들


왜 재일 조선 학교 학생들에게 기부했는지를 물었다. 할머니는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몇 차례 껌벅인 후 말했다. "이상하게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눈물이 난다.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들의 자손이지 않나. 내가 여유가 있다면 더 돕고 싶지만, 그렇게는 못해 주니까 아쉽지.... 힘 닿는 데까지, 손끝 닿는 데까지 해봐야지. 
한 사람이라도 더 공부시키고 싶다..."
할머니는 자신이 일본군에 끌려 가던 시절을 떠올리며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본인들 속에서 차별받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p43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 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일본 대사관 (주대한민국 일본국 대사관)을 향해 "일본 대사는 들어라, 일본 대사는 전해라."라고 말한다. '사과'라는 말이 아닌 '사죄'라는 말을 사용한다. 일본군의 행동이 '과오'가 아닌 '범죄'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p49


영상을 확인하다가 재일 조선 학교 학생들을 만나 눈물을 흘리는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지난 6월 재일 조선 학교 학생들에게 '김복동 장학금'을 전달하는 도쿄의 행사장에서였다. 모두 기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학생들은 검은색 치마에 흰색 저고리로 된 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 한복이 학생들의 교복이라고했다. 학생들의 나이는 열 여섯, 열일곱. 할머니는 별다른 말없이 학생들의 손을 잡고서는 갑작스레 눈물을 홀렸다.
-p52


소녀상이 세워지기 전만 해도 할머니는 수요 시위에 어린 학생들이 방문하는 걸 몹시 불편해 했어요. 그 어린 학생들에게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설명하라는 거냐며 크게 화를 내시기도 했어요. 할머니는 자신의 고통을 알린다고만 생각했지, 공감 받아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평화의 소녀상'을 계기로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 갔어요.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고 나서 수요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구성이 점점 다양해 졌어요. 
초등학생들도 참석하고, 외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어요. 그 자리에서 할머니는 자신에게 공감해주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서로 손을 맞잡았어요. 그러면서 할머니의 생각에 변화가 찾아온 것 같아요.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과 아픔을 나눌 수 있게 되고, 자신을 그저 피해자가 아닌 함께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된 거죠.
-p114


김복동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우리 모두가 또렷이 기억해야만 우리가 이 문제를 잊지 않고 있음을 일본 정부가 알 수 있고, 우리 정부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역사를 머리에서 지워내는 순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영화 「김복동」을 본 우리들이 김복동 할머니의 이름을 기억하고 역사를 제대로 새겨야한다.

-p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