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22.12/3]
역시 알릴레오를 통해 알게 된 책과 저자인 김승섭 교수님.
사실 사회역학이라는 것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책에 나오는 여러 사례들도 채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교수님의 따뜻한 시선이 좋았고 한편 감사함도 느낀다.
이제 오십줄에 든 나이지만 여전히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상식을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때로는 아직도 철들지 못했다거나 세상 물정 모른다는 말을 듣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아직 이런 온기 있는 학자를 만나게 되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아래는 책 속의 문장들.
"역학Epidemiology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
사회역학은 그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몸에 질병으로 남긴 상처를 해독하는 학문입니다."
p166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세월호 참사까지 기록 없이 이렇게 지나간 사건으로 남겨둘 수는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이 참사의 연쇄 고리를 끊었던 사건으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p199
학계의 오랜 상식,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역사에 남을 만한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전 세계적으로 정신과 질환 진단에서 표준으로 사용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DSM"의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기로 한 것입니다."
p219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p302 ~ 305
저는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경험들을 계속하고 그것들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간직할 수 있기를 또 길러나갈 수 있기를, 그것이 가능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 훨씬 커요. 어찌 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지요.
. . .
그리고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 . .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당부할게요. 상처받는 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 활동을 하다 보면, 내가 '상대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분명히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길 거예요. 그리고 '우리 편'에게서 받는 상처가 훨씬 더 아플 수도 있어요. 많이 힘들겠지만, 그 상처로 인해서 도망가지 말고, 그것에 대해 꼭 주변 사람들과 용기를 내서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으로 간직하세요.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진짜예요.
유럽도시 기행 2 ['22. 11/5]
작가님의 두번째 유럽 도시 기행문.
상상 속이지만 작가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도시들을 탐험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작가님은 어떻게 여행을 하실까, 그 과정이 이제는 궁금해진다. 목적지는 어떻게 정하는지, 사전 준비는 얼마나 어떻게 하시는지, 해박한 여행지의 지식들은 여행 전/중/후 어떻게 습득해 가시는지. 주요 정보들은 어디서 어떻게 찾으시는지 등등.
모든 여행책들은 재미있다!!!
아래는 책 속의 문장들
"빈이 지체 높은 귀족이라면 부다페스트는 모진 고생을 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평민 같았고 프라하는 걱정없이 살아가는 '명랑 소년'을 보는 듯했다. 온몸이 부서지는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겨우 깨어나 재활 중인 중년 남자라고 해도 될 드레스덴은 프라하에 갈 때 들르기 좋은 도시여서 2권에 넣었다."
p58 (비더마이어 시대)
나폴레옹의 패퇴와 함께 민주주의 혁명이 막을 내리고 전제군주정이 부활하자 독일과 오스트리아 민중은 극심한 정치적 좌절감에 빠졌다. 혁명의 기대에 부풀었던 신흥 중산 계급은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고 소박한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 데 몰두함으로써 '시대의 우울'을 잊으려 했다. 20세기 문화 연구자들은 그런 시기를 '비더 마이어 시대'라고 했다.
'비더 (bieder)'는 우직하다는 뜻인데 조롱하는 느낌이 살짝 얹혀 있다. 비더 마이어라는 인물은 여러 독일 작가들의 다양한 문학 작품을 통해 만들어졌다. 직업은 시골 학교 교사이고 성격은 우직한데 생활 태도는 성실 근면하고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가족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는 소박한 가구를 갖춘 작은 집에 살면서 텃밭을가 꾼다. 일상의 작은 일에 정성을 기울이며 조용하게 사는, 요즘 말로 하자면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시민 (市民)이다.
p59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반동(反動)의 시간도 예외가 아니다. 좌절감이 옅어지고,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쌓이고, 대중의 이성이 눈 뜨고,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용기가 번지면, 어느 날 갑자기 역사의 물결이 밀려와 진보의 모든 배를 한꺼번에 띄워 올린다.
p188 (보헤미안)
그런데 19세기 후반 보헤미안의 뜻이 달라졌다. 유럽 사회의 주류로 지위를 굳힌 부르주아 계급의 틀에 박힌 도덕 규범이나 행동 양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한 가치관에 따라 자유분방하게 활동하는 지식인과 예술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주로 시인 • 소설가·화가 · 음악인이었다.
보헤미안은 사회의 지배적인 규범과 관습을 추종하지 않았다. 스스로 옳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생계 불안과 사회적 편견에 굴복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
계속 가 보겠습니다. ['22. 9/3]
여러 전문직업인들 중에 검사, 변호사라는 업을 가진 이들과 직접 만나거나 얽힐 일들은 흔하지 않다. 아마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없을 수도 있다. 그에 반해 이 직업을 얻기 위한 과정과 자격을 따져볼 때 막연하지만 이들이 대체로 뛰어난 능력들을 가졌고, 도덕적으로도 적어도 평균 이상은 될거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세상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되고, 그것들이 쌓이면서 그런 인식들은 조금씩 깨어져 가는 듯. 특히나 검사라는 집단의 평균을 보면 사회가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따라갈 의지가 별로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임은정 검사님의 이번 책은 그런 인식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뛰어난 머리와 권력을 가진 이들이 곧게 서지 못하면 어찌되는지, 얼마나 추할 수 있는지 세세하게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임은정 검사님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얼마나 자주, 오랜 시간 혼자 고민하고 고통스러우셨을까 생각도 든다. 나라면 저럴 수 있었을까...
아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겠지만, 그 계란이 뭉게진 자국을 누군가 보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간다면 언젠가는 좀 더 나은 검찰이 되지 않을까.
검사님이 가시는 그 길을 조용히 응원하며 따라가 보고 싶다.
감사합니다, 검사님.
p53. 논고문에 대한 생각
제가 느끼고 깨달은 법의 정신은 36.5도의 체온이 담긴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민입니다. 공판 검사에게는 피해자의 고통과 절망, 우리 사회의 분노와 자책, 피고인에 대한 연민과 충고 등을 모두를 대신하여 법정에서 말할 의무가 있지요. 판사, 피고인은 물론 방청하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 더러는 법정을 떠돌고 있을 가여운 영혼에게 설명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제 진심을 논고문에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p147
정의로운 검찰에 대한 꿈을 동료 분들과 함께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바꿀 수 있으니까요.
p151
검찰 스스로 만든 치외법권을 우리 스스로 걷어 냅시다. 대한민국에 치외법권은 없습니다. 저는 꿈을 꿉니다. 바로 선 검찰, 신뢰받는 검찰을 늘 꿈꿉니다. 이 꿈이 저만의 꿈은 아니겠지요?
p181
그간 도가니 사건 등 이런 저런 참혹한 사건들을 담당하며, '세상은 물시계와 같구나, 사람들의 눈물이 차올라 넘쳐야 초침 하나가 겨우 움직이는구나, 사회가 함께 울어 줄 때 비로소 역사가 한 발을 떼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불의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깨우는 죽비 소리가 불협화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합창을 위한 하모니로 인정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따뜻한 정의가 넘치는 사회가 되겠지요.
p208
"용서는 피해자의 의무가 아닌 권리이고, 사과는 가해자의 선택이 아닌 의무입니다"
p244
어떤 일이든 주어진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유능한 검사들과 침묵의 카르텔, 그 카르텔에서 빠져나오고 보니 저는 이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었습니다.
p245
제 통화 연결음은 안치환의 〈귀뚜라미>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인데, 귀뚜라미가 저인 듯 싶어 들을 때마다 울컥하지요. 불가촉천민인 저에게 용기 내어 전화한 동료들이 저처럼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솔직히는 제 처지를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p253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지시에 따라 선량한 표정으로 한 사람을 생매장하는 광경은 너무도 기괴합니다. 지목 당하면 닭이 울기 전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처럼 임은정을 부인하기에 급급했고, 급기야 생존을 위해 색출 작업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모습을 쏟아지는 흙더미 사이로 보았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표정들이 섬뜩했지요....
오늘도 등산 ['22.7/17]
등산을 좋아하는 젊은 여성이 쓴 무겁지 않은 글들의 모임이다. 산에 가면 아직 나이 많은 남성들이 위주이기는 하지만 가끔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산을 오르는 느낌과 생각들을 접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그 외 간단한 등산 시 유의점, 필요한 것들, 산행 소개 등이 있다. 초보 등산인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듯.
아무튼, 산 ['22.7/16]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아무튼 시리즈의 산 편이다.
저자는 등산가이면서 등산 관련 간행물의 편집도 해 보았고 트레일러닝도 곧잘 하는, 등산과 인문 양쪽을 모두 겸비하신 분인 듯.
재미있게 술술 읽히고 눈에 익은 산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제 초보 동호인에 입문한 나에게는 공감은 어렵다. 그리고 곳곳에 묻어 나오는 진지함이 조금은 부담이 되고.
밥보다 등산 ['22. 7/9]
몇 해 전부터 등산에 조금씩 즐거움을 느끼게 되며 관련된 책들도 함께 찾아 읽게 되었다.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접해본 몇 권의 책들은 너무 진지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지식위주거나, 또는 그저 산과 코스 소개 위주여서 책 읽는 재미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근래 접한 등산을 주제로 한 책들 중에 가장 재미있고 몰입해서 읽었던 책이다.
억지로 정보를 주기보다는 그저 소소한 일상과 기억들을 솔직하고 재치있게 풀고 있어 쉽고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같은 산을 오르더라도 각자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를진대 작가만이 갖고 있는, 그래도 또 어느 정도 공감 가는 내용들이 많아 어느새 쑥 빠지게 된다.
그리고 나의 고향이기도 한 부산의 산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한몫을 했다.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꼬맹이때 올랐던 동네 뒷산, 소풍길에 올랐다 하산하면 넘어져 팔을 부러뜨렸던 금정산 등등 추억들을 되새길 수 있는 즐거운 독서가 되었던 듯.
내가 찾던 바로 그 책!!!
아래는 공감가는 작가의 에필로그.
"등산과 독서는 닮았다. 우선 산이 많듯, 책 역시 다양하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안 읽듯, 한 번 간 산도 좀처럼 다시 가지 않는다. 동네 뒷산이 아닌 한. 책에 베스트셀러가 있듯 산 중에서도 명산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데, 베스트셀러를 좇는다고 해서 참된 독서가가 될 수 없듯 명산만 오른다고 해서 뛰어난 산객이 될 수 없다. 자신에게 맞는 책과 산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갖춰야 비로소 삶을 견디는 게 아니라 즐길 수 있을 테다."
신영복 평전 ['22. 7/9]
나이가 들면서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찾아 명복을 빌고 추모하는 경험들이 하나둘씩 쌓이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고, 세월호 아이들이 그랬고, 비교적 근래에는 노회찬 전의원이 그랬다.
때로는 당시에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제때 챙기지 못했음을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있는데 신영복 선생님이 그러하다. 가셨던 해인 2016년이었으면 익히 알고 있었고 선생님 책들도 한두 권은 보았을 때였는데 왠지, 그때는 무엇을 하였는지 선생님 가신 날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 죄송한 마음이 크다...
학식, 인품, 유머, 약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 인간에 대한 배려,,,나도 가지고 싶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알기 어렵고, 대신 이렇게 선생님을 찬찬히 볼 수 있는 책이라도 읽어보려 하였다.
다소 어렵고 마치 참고서처럼 부연 설명들이 빼곡하여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문득 선생님이 생각날 때 다시 꺼내 읽어보아도 될 것 같다.
아래는 책 속의 문장들
p17~19
쇠귀의 삶은 교도소 생활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그는 출옥한 직후 한 신문에 쓴 글에서 자신의 삶을 세 길에 비유해 설명했다. 첫 번째 길은 학교 사택에서 태어나 책과 교실에서 이어진 28세까지의 삶이다.
1941년 고읍(古邑)인 밀양을 고향으로 나는 국민학교의 교장 사택에서 태어났다. 학교의 사택과 교실 그리고 학교 운동장에서 시작된 나의 어린 시절은 당시의 가난하고 어려웠던 식민지의 시절과 해방 전후의 격동으로부터 일정하게 보호된 환경이었다. 이러한 환경은 대체로 4 · 19를 맞은 대학 2학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의 나의 길은 내가 걸어온 나의 길이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서 닦여진 길이었으며, 누군가에 의해서 주어진 책과 교실이었다. 생각하면 이것은 나의 선택은 아니었다. 심부름 같은 길이었다.
밀양 초등학교, 밀양 중, 부산 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한 후 2 학년 때 4 ·19 혁명을 체험한다. 그에게 4 · 19는 잠시 푸른 하늘을 본 시절이었다. 군사 쿠데타로 그 푸른 하늘에는 곧 먹구름이 덮였고, 쇠귀는 우리를 구속하는 실체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이후 한국 사회의 변혁을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실천하는 길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 길은 군사 정권에 의해 강제 차단 되었고, 쇠귀는 긴 감옥살이를 시작한다. 기나긴 감옥살이는 독재 권력이 강요한 두 번째 길이었다. 쇠귀는 20년 20일 동안 유폐되었고, 인간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돌아온다. 세 번째 길은 감옥살이보다 좀 더 긴 시간 이어졌다. 첫 번째 길이 학교와 책 그리고 관념의 세계로 이루어진 심부름 인생, 두 번째 길이 사형수-무기수로 이어지는 강요된 형극의 길이었다면, 세 번째 길은 성공회대에서 이 시대의 정직한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이었다. 쇠귀의 삶은 이렇듯 감옥살이 전 학생 시절, 감옥살이 20년, 출감 후로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쇠귀의 삶을 유년 시절, 초중고 시절, 대학 시절, 통혁당 사건, 감옥살이, 대학교수 시절의 여섯 시기로 구분했다. 밀양의 유년 시절은 쇠귀의 이후 행위와 사유의 바탕이기 때문에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밀양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부산 상고를 다니던 시절 쇠귀는 늘 '응원 단장'이었다. 대학시절은 신영복 심부름 인생의 절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분주했다. 4 · 19 혁명 이후 근본적인 공부에 매진했던 학부와 대학원 시절, 석사 학위를 받고 숙명 여대와 육군 사관학교에서 교관을 지낸 시기 까지를 대학 시절로 묶었다. 강사, 교관 생활을 했지만 쇠귀의 사유와 생활의 터전은 대학이었다. 쇠귀의 삶을 요동치게 한 것은 '통일 혁명당 사건'이다. 통혁당 핵심 인사들과 다소간의 친분이 있고 시대를 고민하는 청년 학생으로서 양심에 충실했을 뿐이지만, 그 사건은 쇠귀의 삶을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이 사건은 물론 조작되고 과장된 면이 있지만 사회 변혁을 위한 쇠귀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해 볼 부분도 있다. 쇠귀의 감옥살이 전모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쇠귀는 교도소 당국의 검열 속에서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해 여러 상념을 반듯하게 편지로 써 보낸다. 쇠귀는 출옥 직후부터 성공회대에서 시간 강사 생활을 시작했고, 1998년 사면 복권된 뒤에야 비로소 정규직 교수가 되어 2006년 정년 퇴임한다. 이후에도 석좌 교수로서 작고할 때까지 성공회대와 인연을 이어 갔다. '변방' 성공회대에서 쇠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았다. 쇠귀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확고한 소신 탓으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지도 않았다. 이 책은 쇠귀가 남긴 여 러 글과 지인들과 나눈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회고담, 기타 신문 기사나 기록 등을 바탕으로 쇠귀의 삶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p134
쇠귀는 1989년 1월 10일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는 천주교 성프란치스코회 수도원 교육 회관에서 정양모 신부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린다. 유 여사가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성당에서 식을 올린 것이다. 출감 당시 쇠귀 부모는 우이동에 살고 있었다. 쇠귀는 1989년 초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로 이사할 때까지 잠시 우이동에서 지낸다. 그래서 호를 쇠귀 (혹은 우이 牛耳) '라고 지었다. 쇠귀는 결혼 한 뒤에도 지병으로 오랫동안 병석에 있던 모친과 목동에서 함께 살며 극진하게 간병했지만, 모친은 1989년 12월 초에 별세한다.
p227
“무기수는 출소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뭔가 살아갈 의미가 있어야 해요. 결과적으로 인생이란 게 그런 게 아닌가 해요. 삶 자체가 과정이 아름다워야 하고, 뭔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깨달음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아마 무기수라는 어쩌면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이 인생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열어 주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p301
감옥에 오기 전 학생 운동을 같이 하던 선후배나 친구가 많았다. 당시 쇠귀는 진보적이고 논리적이며 실천적인 그리고 강인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감옥에서 나와 그러한 열혈 운동권 선후배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수소문해 보았지만 대부분 찾을 수 없었다. 반면 그 당시에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꾸준하게 자기의 길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양심의 가 책에서 출발한 사람들이었다. 양심적 동기에서 출발한 사람은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p306
쇠귀는 출감 직후 한 가톨릭 신부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종교관을 솔직하게 밝힌 적이 있다. 쇠귀는 믿게 되는 과정은 생략되고 불쑥 뭔가를 믿는다는 사고나 행위에 담긴 비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믿는 것보다는 '이해'하는 것이 어린 시절 이후 쇠귀 사고의 기본 바탕이었고, 평생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양심상'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p308
개인이나 사회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황이 가장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교통 법규를 위반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적발된 사람만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의 부정이 자신의 부정을 합리화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부끄러움이 없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부정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전략적 지점을 찾기 어렵다.
p339
쇠귀 서체 연구로 2003년 학위 논문을 쓴 김은숙은 신영복 한글 서체의 특징으로 다음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서민적이고 소박하며 내용이 민중적이다. 둘째, 역동적이다. 쇠귀의 글씨는 획의 굵기와 필세의 리듬에 변화가 많은 것을 특징으로 한다. 셋째, 다양한 자형들을 내용과 잘 어울리게 배치한다. 그런 이유로 연대체, 어깨동무체, 협동체라 불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넷째, 그림과 글씨의 경계를 넘나 든다.
* 상선약수 (上善若水) : 세상에서 제일 선한 것은 ‘물’과 같다.
p406
쇠귀가 형수와 계수를 수신인으로 많은 편지를 보낸 것은, 식구들이 모여 자기 편지를 읽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며느리들을 '주인공'의 위치로 올려주고 싶었던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을 것이다. 쇠귀는 같은 공간 혹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체질인 사람이었다. 나중에 조카들이 태어나자 그들을 위해 편지에 삽화를 그려 넣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22.7/3]
몇 달 전에 주문해 놓고서는 꿰둔 곶감 빼먹듯 조금씩 읽어(?) 나갔다.
먼저 나왔던 책도 몇 해 전 보았지만 사실 아직도 책 속의 그림들이 그려지는 과정들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영화의 회상 장면으로 넘어가듯 내 의식이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파스텔같은 색감과 거친듯 부드러운 느낌의 터치도 편안함을 준다.
주제가 된 슈퍼들을 실제 지도에서 찾아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온라인 지도의 거리 뷰 사진을 찾다 보면 이제는 문을 닫은 곳도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어쩌면 예술적 가치에 더해 실물을 담아내는 현장의 기록으로서의 가치도 있을 것 같다.
아래 책 속의 문장이 글을 읽는 내 마음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같아 옮겨봅니다.
p153
물건과 사람은 서로 인연을 맺고 살고 있습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시간이 지나도 기억 속에 온전히 존재할 때 비로소 나의 것이라 느낍니다.
. . .
이사할 때 장롱 뒤에서 그렇게 찾아 헤매던 물건을 발견할 때의 기쁨, 박제된 허물의 먼지를 털어 낸 사물을 통해 내 안에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그 순간의 냄새, 풍경, 색깔, 감정이 바람처럼 다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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