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9년 4월 25일, 16년 함께 지냈던 반려견을 안락사로 보냈습니다.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또 그렇게 막 애지중지하게 키운 것은 아니고, 마지막 순간 보낼 때에도 물론 슬펐지만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은 아니었으며 어쩌면 빨리 잊어(?)가고 있는 듯 하네요.
그래도 때때로 문득 생각이 나기도 하고, 집 한구석 작은 추모 공간도 만들었고, 지난 사진들 정리하다 보니 또 한편 그렇게 매정한 주인은 아니었지 않나 스스로 위로해 보기도 합니다.
함께 지내면서 바라보았던 노화의 과정과 안락사를 준비하면서 알게된 것들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당연히 전문가가 아닌,그저 반려견을 한번 키웠고 떠나보낸 일반인의 관점입니다.
그냥 이런 과정을 겪었구나 하고 보시면 될 듯.
지미. 미니핀.
지난 2003년 2월 아내 생일에 데려왔고 그 때가 생후 2~3 개월 정도였으니 만 16년하고도 5~6개월을 살다 간 것이 아닐까 추정.
- 노화 시작
첫 노화의 감지는 하얀 털부터인 듯.
미니핀 블랙탄이라 머리에는 온통 검은 털이었는데 어느새 새치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이 때만 해도 '어, 이놈봐라? 너두 이제 나이 좀 들었다는거야?' 이러고 말았던 듯
그 때가 대략 2014년 정도였으니 만으로 11살 정도.
- 잘 뛰어 오르지 못함
.2015년 (12살)
껑충 잘 뛰어 올라오던 침대, 소파 위를 잘 오르지 못한다.
도움이 좀 될까 싶어 키, 몸 사이즈 재어서는 계단을 만들어 줌.
처음에는 3단 계단을 만들어 줬으나 너무 타이트하게 만들었는가보다(목재료를 아끼려는 의도도 있긴 했다..) 지미가 잘 적응을 못 하는 듯.
기왕 만들어 주는 것 반려견 몸보다 훨씬 크고 넉넉하게 만드는 것이 좋을 듯.
어차피 침대, 소파 각각 오를 때 사용해야 하니 좀 더 개선된 1단짜리를 만들어 주기도.(발판 크기를 좀 더 키웠다)
한동안 이렇게 목재 계단으로 버티다가 결국 펫샵에서 파는 쿠션으로 된 계단도 하나 더 추가.
그냥 여기 저기 깔아 놓고 지미가 알아서 올라오고 내려가도록 해 둠.
결국 침대 매트를 포기...
지미는 보통 침대 위에서 같이 잠들곤 했다.
침대에서 내려갈 때 생각만큼 계단을 잘 쓰지 않고 한참을 망설이다 그냥 풀쩍 뛰어내리기도.
혹 골절이라도 입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결국은 쉽게 오를 수 있도록 아예 침대 매트를 치워 버리고 침대 프레임 위에 이불 폭신하게 깔아서 지냄.
(올라오는 것도 쉽고, 내려갈 때도 안전하게 내려간다)
다만 폭신한 침대 매트가 없으니 허리가 다소 불편한 것은 사람이 감내해야.
- 볼품 없어지는 수염
길고 가지런하던 수염도 덤성덤성해지고, 수도 많이 줄어든다.
마지막에는 거의 몇 가닥 남지 않음, ㅜㅜ
- 시각
눈동자 중앙에 조금씩 뿌옇게 보이던 것이 조금씩 커져서 결국 양쪽 모두 완전히 하얗게 진행됨
나중에는 빛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양쪽 시력을 모두 잃은 것...
(수술도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이미 노화가 많이 진행되었고, 효과도 장담할 수 없는 듯 하여 수술은 하지 않음.
의사 선생님께서 반려견들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답답해하거나 행동에 제약을 많이 받지 않는다고 하셔 다소 위안을 받기도.
아마 후각, 청각이 잘 발달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 청각
당연히 듣는 능력도 떨어진다.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던 녀석이 사람이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도 잘 느끼지 못한다...
나중에는 가까이서 큰 소리를 내면 깜짝 반응하는 정도.
- 대소변 습관
숫놈인데 나이가 들어서는 한쪽 다리를 들고 소변을 보지 못하고 앉아서 해결했다.
더한 문제는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한다는 것.
처음에는 기저귀를 채워 지내보았다.
그런데 바로바로 갈아줄 수 없으니 오줌에 피부가 상하는 듯; .그래서 결국은 바닥에 흡수 패드를 깔아서 지내기도.
나중에는 우리부부가 오래 시간을 비울 때는 기저귀를 채우고, 집에 사람이 있을 때는 기저귀를 빼고 패드만 까는 식으로 생활함.
그마저도 거동이 불편해진 후에는 그냥 누워서 쉬하고, 몸에 소변을 다 묻힌 채로 바둥거리기도....
- 앉을 자리 투정
평소 푹신한 쿠션이나 방석같은 것이 있으면 찾아서 그 위에 앉고는 했는데 노화가 온 후에는 앉을 자리를 빨리 정하지 못한다.
뭔가 불편한지 계속 앞발로 자리를 고치고, 이리저리 바꾸고 징징거리기도 하다가 겨우 자리를 잡게 된다.
왜 그런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음,ㅡㅡ
- 굽어지는 허리
걸음이 점점 힘들어지며 보이는 외관의 변화는 허리가 점점 둥글게 굽어지는 것.
(다리 힘이 약해져 걸음이 어려운 것으로 생각했으나 척추측만증 때문에 허리가 휘게 되고 그러면서 걸음도 힘들어 지는 것이란다)
허리가 휘고 잘 걷지를 못하니 마루바닥같이 미끄러운 곳에서는 앞 다리가 양쪽으로 벌어지며 미끌어져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자주 넘어진다.
발바닥도 예전의 탄력을 잃어 마찰력이 떨어지는 것 같고.
- 치매
사실 정식으로 치매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나 증상으로 보아 치매가 아닐까 혼자 판단해본 것이기는 하다.
원래 소변은 지정된 곳에서 잘 가렸는데 언젠가부터 여기저기에 해결해 버리고, 한쪽 방향으로만 빙글 빙글 돌기도.
황산화제(AVTVAIT)를 주문해서 먹이기도 했는데 (디따 비싸다!!, 해외 직구 찾아보면 좀 싸게 구할 수도) 사실 눈에 띄는 개선은 찾기 어려웠음
- 잘 먹지 못함
턱 힘이 약해져서인지 사료를 주면 잘 씹지 못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료를 따뜻한 물에 불려 줌.
그런데 자꾸 체중이 줄고 먹는 것이 시원치 않아 캔으로 된 습식사료를 얼마간 섞어 먹이기도.
그러다 조금 더 발전하여 믹서기로 사료를 완전히 갈아 따뜻한 물에 풀고, 거기에 캔 습식 사료를 섞어 먹이기를 몇 개월 한 듯.
참 잘 먹는 먹돌이었는데, 마지막 가기 전에는 이렇게 주는 사료마저도 거의 입에 대지를 않았다...
- 입 냄새
노화가 되면서 입에서 나는 냄새도 점점 심해진다.
처음에는 그냥 좀 역한 냄새 정도였으나 마지막 가기 얼마 전부터는 정말 견디기 힘든 악취가 나기도.
- 피부 노화
말랑말랑 예쁜 귀도 석화가 진행되어 귀 가장자리가 조금씩 떨어져 나간다.
( 이런 증상이 있는지는 처음 알게 됨 )
- 체중 감소
성견때 4키로가 넘게 나가던 녀석이, 나중에는 2.5 키로까지 체중이 줄었다.
등의 척추 뼈 마디마디가 다 드러날 정도.
## 이 모든 증상들이 심해지며,ㅠㅠ
위에 나열한 증상들이 제각각 심해지니 하루 하루 생활 자체가 힘들어진다. 반려견도, 주인도.
응아를 보고난 후에도 피해다니지 못하고 여기 저기 밟고 다니다 보니 퇴근하고 집에 오면 마루 전체가 응아 밭이 되어 있는 경우도 다반사.
응아야 치우면 되지만 잘 걷지 못하고 등이 굽다보니 자꾸 앞으로 덤블링을 하게 되고, 응아를 하다가도 고꾸라지면 다시 일어나지를 못한다
(미니핀 특성상 다리가 긴 것도 자주 앞므로 넘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듯).
사람이 옆에 없으면 그냥 응아 옆에서 바둥거리다 온통 몸에 묻히거나, 바닥에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
잘 걷지 못하고, 대소변 영역이 불분명해지면서 몇가지 방법들을 써 보았다.
▶ 발 미끄러짐 방지
다이소에 파는 강아지 양말을 신겨 보기도 하고, 고무장갑 손가락을 잘라 입혀 보기도 했으나 자꾸 흘러내려서 결국 포기
(일단 신고 있으면 확실히 미끄러짐은 덜하다!)
마루 이곳 저곳에 합성수지로 된 요가 매트나, 천으로 된 작은 발카펫 등으로 깔아서 한동안 버티기도.
그런데 이 방법도 증상이 점점 심해지니 한계가 있고, 대소변이 묻으면 씻고 처리하기도 힘들어진다.
▶ 울타리로 행동 반경 줄여 주기
쇼핑몰에 파는 애견용 울타리를 몇 개 사고, 미끄러짐 방지용 사각 타일식 매트를 수십장 사서 마루에 깔고, 한두평 정도 공간에서만 활동할 수 있도록 함.
그런데 이러고 보니 지미가 자꾸 벽에 꽝꽝 부딕혀 버린다.듣고 있으면 정말 아프겠구나 싶을 정도로 딱 소리가 나며 헤딩을 해 버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서리마다 충격 방지용 쿠션을 달고, 울타리에도 카펫 같은 걸로 덮어 충격을 좀 덜어주기도.
▶ 휠체어 시도
혼자서 서 있기만 해도 좀 낫지 않을까 싶어 반려견용 휠체어를 사서 앉혀 보기도 했으나 이 또한 고통스러워 한다.
허리가 굽은 상태에서 강제로 내 발만 잡아주는 휠체어 구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듯.
##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게 되며...
힘들어도 겨우 걸을 수는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아예 일어나 있는 것조차 불가능해짐.
결국 대소변도 그냥 누워서 보게 되고, 그래도 본능적으로 대소변을 일어나서 보려 발버둥치다보니 다리는 항상 찰과상으로 피딱지가 붙어있게 된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깔아 놓은 카펫이랑 이불에 핏자국이 빨갛게 남을 정도로.
하얀 가루약 바르고 달래주지만 사람이 계속 붙어 있지 않으면 반려견 혼자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처지..
계속 누워만 있게 되니 혹시나 욕창이 생기지나 않을까 앞뒤로 번갈아 눕혀주기도 함.
그렇게 챙기기는 했지만 나중에는 어깨 부분 손톱 크기만한 살이 딱딱하게 뭉쳐 굳어버리고, 얼마 후 그 부위만 떨어져 나가 병원에 가서 깁기도.
(욕창은 아니라고 하는데, 정확한 이유 모르겠음...)
## 보내기 바로 전
지미가 잠을 자다가 한두시간 간격으로, 또는 더 짧은 간격으로 눈을 뜨는데 그저 고통스럽게 비명만 지른다.
거동이 안되니 그냥 누워서 꺼어꺼어 울부짓는데 이젠 그 소리마저 기력이 약해 잘 나오지 않을 정도...
그렇게 울다가도 엄마, 아빠가 가서 팔을 얼굴 아래로 넣어주고 몸통을 포대기로 감싸서 안고 있으면 그나마 진정하기도 한다.
이 또한 우리가 24시간 곁에 있기 힘드니 펫샵에 파는 천으로 된 반려견용 크로스백을 사서 넣어보기도 했지만 사람 손만한 효과는 없었다.
증상들이 심해지면서는 눈에 띄게 먹는 것이 줄어든다.
갈아서 주는 사료도 먹지 않고, 물도 입만 잠시 대고는 피했다...
우리가 반려견을 보낼 날짜를 정한 것도 대략 이 시점.
빠른 건지 늦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우리가 아는 지식과, 마음이 주는 신호를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
잘 있어, 지미야.
먼 훗날 우리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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