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루엘은 원래 계획에는 없던 여정이었습니다.
알바라신이 목적지였으나 알바라신에는 마땅한 숙소를 찾기가 어려워 테루엘에 호텔을 예약했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남아 호텔 근처의 테루엘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던 것.
호텔을 나서 10분 정도 갔을까?
오래된 다리 사이를 통과해 좁은 골목을 돌아 오르니 작은 주차장이 보이고, 왠지 여기 같다는 촉이 발동하여 일단 차를 세우기로 합니다.
해외에서의 차량 대여와 낯선 곳에서의 운전에 저나 집사람이나 모두 바짝 긴장하고 있던 터라 여기서 드디어 우리 부부의 다툼이 한 차례 폭발기도 하였지만 30분만에 대충 수습하고는 다시 여행 모드로 전환합니다.
(사는 게 다 똑같...)
처음 사용해보는 무인 주차기.
처음에 2시간에 1.3EU 한번 티케팅하고, 그 다음에 다시 한번 더 같은 요금으로 지불하려 했으나 두 번째 시도에서는 3EU를 넣어야 발권이 되더라는.
언어가 안 통하니 뭐 달라는 대로 줘야지; ㅡㅡ;
주차장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 지나쳤던 다리가 바로 가까이에 보입니다.
언뜻 보면 그냥 오래된 다리 같지만, 실제로 사람이 지나다니는 다리로 보기에는 폭이 상당히 좁아요.
추측에 중세의 수로가 아닐까~^^
2차선 도로에 차들도 얼마 없고, 한산한 시골 마을인 것 같아 오히려 더 기대가 되더라는.
이렇게 주차는 하였으나 광장 방향이 어느 쪽이지?
이럴 땐 직접 물어보는 게 최선~!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조금 만만해(?) 뵈는 마담 두 분을 붙잡고 예의를 갖춰 물어보니 친절하게 방향을 알려주시네요;
거리가 머냐고 물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10분이면 도착할거라고~^^
(서툴지만 영어를 좀 하셨던 기억)
테루엘 시가의 중심에 있는 토리코(Torico) 광장.
중앙 분수대에 소 형상을 올려 놓은 작은 탑이 있습니다.
아라곤(Aragon)주에 위치한 테루엘은 여름에는 무더위, 겨울에는 혹한의 기후와 해발 1,000미터에 달하는 고지대라서 인구가 얼마되지 않는 작은 도시라고 하네요; 지금은 유네스코에 등록된 오래된 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들로 인해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정도가 아닐까.
참, 여기 광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 부부에게 다가왔던 소녀 둘이 기억납니다;
테루엘의 연인이 잠들었다는 성당을 찾기 위해 서성거리고 있으니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 둘이 뛰어와서는 갑자기 손을 내밀며 뭘 받아라고 신호를 보내더군요;
순간 살짝 경계도 했지만 손바닥을 펼쳐 보였더니 해바라기 씨 같은 것을 조금 쥐어주고는 또 신이 나서 달려가버렸던...
낯선 동양인들이 신기했던건지, 호의였는지 장난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순박한 시골 소녀들을 만난 것 같아 호감지수를 올려줍니다.
또 한번 길을 물어 찾아온 성당; 정식 이름은 San Pedro Church라고 하네요.
시내 전체를 다 돌아도 30분도 안 걸릴 거리여서, 대부분의 볼거리는 광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이 성당도 좁은 골목길 하나만 통과하니 바로 앞에 있더라는.
바깥에서 보기에는 그저 아무도 없는 교회당 같은데 한쪽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작은 매표소와, 기념품점, 그리고 오디오 가이드도 갖추어 놓아 의외로 잘 관리되는 인상.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내부 구경은 개별로는 안되고, 이미 들어가 돌고 있는 팀이 있으니 같이 합류하라고 하는 듯.
실제로 들어가보니 설명하는 가이드 한 명에, 10명 정도의 무리가 성당 내부를 구경하고 있더군요.
영어 가이드는 없을까 아쉬웠으나 어차피 리스닝도 썩 좋지 않으니 뭐 그냥 대충 눈치보며 우리 부부 둘만의 투어를 시작해 봅니다.
본당 내부의 모습.
가이드가 한참을 뭐라고 설명한 것 같은데...
여기서도...
성당 본당을 나와 옆의 회랑을 거치니 이렇게 작은 마당이 나타납니다.
같이 다녔던 관광객들 대부분은 스페인 사람들인듯.
가이드는 계속 스페인어만 사용하고, 다들 진지하게 들으며 끄덕거리고는 하더군요.
저 뒤로 보이는 성당 탑의 모양이 무데하르 양식이 아닐까...
(무데하르 양식은 다음번 포스팅에서 따로 한번 다뤄보기로 하고..)
다시 본당으로 돌아와 작은 다락 같은 곳을 올라가나 했더니 몇개의 계단을 거쳐 다다른 곳은 성당 첨탑의 제일 높은 층.
주위를 둘러보니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성탑들이 각 방위마다 하나씩 자리잡고 있는 듯 보입니다.
사실 이 곳을 찾은 건 이 테루엘의 연인이 잠든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내부 관람의 제일 마지막 코스로 이 곳을 안내해 주더군요.
'테루엘의 연인'(Lovers of Teruel)은 말하자면 스페인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해야 하나?
12세기경의 전설같은 로맨스이며, 대략 아래와 같은 스토리라고 합니다.
"어릴때부터 연인이었던 디에고와 이사벨.
나이가 차며 결혼을 이야기하던 둘은 디에고 집안의 가세가 기울자 이사벨 집안의 반대로 식을 올리지 못하게 됩니다.
디에고가 부자가 되어야 결혼을 허락하겠다던 이사벨 집안의 요구에 따라 디에고는 돈을 벌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고;
몇년이 지나도 연락이 없자 이사벨의 아버지는 이사벨을 다른 사람과 결혼을 시키죠.
결혼식이 끝난 다음날, 디에고는 큰 돈을 벌어 나타나지만 이미 지난 시간을 되돌리지는 못하고, 몰래 이사벨에게 다가가 사랑을 구하지만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이사벨은 한 번의 키스조차 허용하지 못하고..."
뭐 대충 이런 스토리입니다.
실제로 위 사진의 디에고와 이사벨을 형상화한 석상들을 보면 둘의 손이 닿은 듯 하면서도 떨어져 있답니다.
이야기 자체는 뭐 그리 새로울 것이 없죠?
어느 나라를 가도 이 비슷한 이야기는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의외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도 보수적이네요.
결혼했다고 키스 한번 허용하지 않는 이사벨도, 둘이 죽어서도 손끝을 떼 놓은 후세 사람들도 모두 오히려 동양의 관념보다도 더 보수적이지 않을까.
Los amantes de Teruel.(Lovers of Teruel)
전시장 내부에 있던 연인을 형상화한 그림.
성당을 나와 조금 걸으니 맞아주는 또다른 작은 광장;
비어 있어 쓸쓸하기도 했지만 성당의 여운을 간직하고 되살리기에는 오히려 더 나은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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