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 작가의 남미 여행기.
이번 책의 여행지는 칠레, 파타고니아, 아르헨티나,아마존,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지역이다.
작가님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지난 2011년 일본 여행을 하면서 어느 곳을 갈까 사전 조사를 하면서였던 것 같다.
그러다 스페인 여행 전에도 한 권 더 읽게 되었고, 어쩌다 지금은 트위트도 팔로잉하는 팬이 된 듯.
초반에는 작가 이름도 모르고 읽다가 일본, 스페인 여행기가 같은 작가임을 알게 되었고 다른 여행기와는 달리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거나 쓸어주는 여행의 느낌들이 좋아 계속 관심이 갔다.
아직 남미는 내 여행지 리스트의 저 아래 있겠지만(사실 뭐 여행지 리스트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전혀 몰랐던 이 지역의 볼거리,느낄거리들을 알 수 있었고 생생한 여행담들도 재미있었던.
작가의 책은 사진들과 구체적 정보 위주인 다른 여행기들과는 달리 느낌과 이야기 중심으로 풀고 있어 여행 에세이로 부르는 게 맞을 듯.
직접 여행을 준비해야 하는 목적이라면 조금 맞지 않겠지만 여행의 느낌과 깊이를 알고 싶어한다면 추천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또한 현재의 나와 비슷한 연배에서 나오는 고민과 생각들, 그리고 사고들 곳곳에서 많이 공감할 수 있어 읽는 즐거움은 더욱 컸습니다.
조만간 두번째 책 '이 별의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되었다'도 주문하게 되지 않을까.
기억에 남는 몇몇 문구들을 옮겨 봅니다.
"두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연기를 내뿜눈 산'은 여전히 연기를 내뿜고 있다. 나는 무엇을 얻겠다고 이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일까. 이렇게 기다려서 갠 하늘 아래 드러난 바위산을 보게 된다면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견디고, 기다리고, 다시 또 원하고... 여행하는 나를 움직이는 욕망은 무엇일까.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남들이 듣지 못한 것을 듣고, 남들이 가지 못한 곳에 가겠다는 의지? 결국 여행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한 번 뿐인 생에서 최고의 것을 보겠다는 욕망과 다름없지 않은가. 그 욕망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오늘 이 풍경을 본다면, 내일은 더 나은 풍경을 찾아 헤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만족 없는 길의 끝에서 어떤 풍경을 마주하게 될까.
세상을 헤매다 결국 기력이 쇠해 돌아오면 내 곁을 지켜줄 이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의 산을 올려다보지만 여전히 세로찰텐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쓸쓸히 산을 돌아 내려온다."
P72 .
"세상에 여행처럼 슬픈 행위가 또 있을까. 익숙한 공간으로부터, 일상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것.
여행은 기본적으로 이별의 행위다. 기껏 이별하고 떠나와 새로운 것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것을 스스로 해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욕망이 만들어낸 서글픈 이별과 파괴.
죽는 날까지 나는 이런 욕망과 의지의 충돌 사이를 오갈 것이다."
P78.
"어쩌다 나는 이렇게 여행중에도 인터넷에 의존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걸까. 스마트폰, 트위터, 카카오톡, 페이스북처럼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이어주는 문명의 도구들. 과거에는 여행자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것들이다. 서로를 소통하게 해준다는 이 문명의 도구가 우리를 점점 고립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볼리비아에 머눌고 있으면서 이 세계와 마음을 나누기보다는 내가 떠나온 지구 반대편의 세계를 기웃거리고 있으니.
여행을 하다 보면 숙소에서도 스마트폰을 들고 침대에 누워 혼자 노는 여행자들이 종종 보인다. 몇 년 전에만 해도 볼 수 없던, 여행의 신풍경 속도가.
멋진 풍경을 만났을 때도 가만히 들여다보기보다는 일단 카메라로 찍기 시작하는 습관은 또 어떤가. 거리에서 길을 찾을 때도 이제는 동네 사람들에게 다가가 묻기보다 구글 지도를 연다. 외로움에 지쳐 옆 침대의 사람에게 말을 걸던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으로 떠나온 세계의 벗들과 대화를 나눈다. 실시간으로 내 여행을 중계하기도 하면서.
자랑하거나 인정받고픈 마음 때문에 하는 행동은 아니다. 그저 혼자서 느끼고, 보고, 만나는 것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일 뿐. 그런 소통에의 갈망이 역설적으로 지금 이곳으로의 몰입을 방해한다.
이 모든 어긋남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여행이란 낯선 것을 향한 동경 때문에 시작되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결국 익숙한 것을 향한 그리움이 일게 마련이니까.
여행이란 결국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고립이다. 그 고립과 단절이 자신과 타인에 대해 더 예민한 감성의 촉수를 일깨우고, 주변의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선을 가능케한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의 고립과 단절은 약해지니 결국 여행이라는 행위의 본질까지 훼손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P247
"언젠가 함께 여행을 했던 연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여행지에서의 나는 배려심과 이핵심이 많은 여행자라고. 쉽게 비교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세계와 사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고.
그런 모습에 반했는데, 일상에서는 너무 다르더란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것처럼 자신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달라고 그가 웃으며 말할 때,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는 애써 항변했다
여행지에서 나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뿐이라고.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나와 맞지 않는 사람도 다 참을 수 있다고.
일상에서도 가족이나 애인에게 늘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그게 부처지 인간이냐고."
P326
"그랬는데 첫 실패를 겪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그 방식으로 더는 갈 수 없는 건가 싶었다. 누군가 그랬다. 오후 세시라는 시간은 무엇을 하기에 애매한 시간이라고. 하루를 시작하기에도, 하루를 마감하기에도 어정쩡한 시간이라고. 나이 마흔을 넘겨 하는 배낭여행 또한 그런 게 아닐까. 지난 8개월간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나는 내가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어중간한 나이가 되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호스텔의 도미토리에 머물면 동양 사람들 중에서는 대부분 내가 제일 연장자였다. 좋은 호텔에 머물며 안락하게 다닐 돈도 없지만, 그런 여행은 어쩐지 지루하게만 보였다. 아직 굳지 않은 말랑말랑한 심장으로 세상을 떠도는 젊은 친구들이 내게는 더 근사하게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 사이에 끼는 게 어색해졌다. 마음이 맞는 여행 친구를 찾기도 점점 어려워졌다. 육체의 나이라는 건 마음의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는 거라고 믿었는데, 몸의 조건이 달라지면서 마음도 그들과 멀어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나 또한 이십대나 삼십내에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호스텔의 외로워 보이는 사십대 배낭 여행자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민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에야 먼저 다가가기 않았을까.
나이가 든다는 게 이렇게 여행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장애를 가져올 줄은 몰랐다. 나도 이제는 다른 방식의 여행을 꿈꾸어야 하는 걸까. 언제까지 좋아하는 이 일로 밥을 벌 수 있을까.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내 인생의 최고점은 이미 찍었고, 이제는 내려가는 일밖에 남지 않은 거라면 어떡해야 하나. 산다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실패하고, 실수하고, 흔들리다 가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어째서 여행에서는 늘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여행에서도 일상처럼 주저앉고, 쉬어야 할 때도 있는 건데...
지금까지 그랬듯 하고 싶은 만큼만 하고,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면 된다. 즐겁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이게 내 여행의 방식 아니었던가. 더 이상 내 가슴이 뛰지 않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고, 더 이상 걷고 싶지도 않다면, 그때 그만두면 된다. 여행이 더 이상 나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아니 내가 더 이상 여행이 보여주는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때 배낭을 내려놓으면 된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두려워할 때가 아니다. 우선 내 체력과 감성이 조금씩 낡고 무디어감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자. 머뭇거릴 수도 있음을, 느려질 수도 있음을 인정하자. 대신 그렇게 머뭇거리고 느려지는 틈새로 이십대의 나였다면 놓쳤을 것들이 보일 것이다. 나이 들어가며 내가 잃어버리게 될 것들을 두려워하지 말자. 산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향해 착실히 한발 한발 내딛는 과정이니까. 그렇다면 결국 상실이라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아닐까. 죽는 순간, 더 이상의 상실도 없이 모든 것은 완벽하게 끝날 테니까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지며 답을 구하려 애쓰지도 말자. 시간이 흐르며 저절로 찾게 될 것이다. 설령 답을 찾지 못한들 무슨 상관일까. 인생은 질문을 던지는 데에 더 의미가 있는 것을..."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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