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2019 Greece

03. 3/24(일) - 크레타, 발로스(Balos)

TommyTomTom 2019. 9. 14. 15:59

공항에서 맡겼던 소화물 찾고, 잠시 화장실 다녀오니 같이 비행기를 탔던 일행들은 모두 빠지고 썰렁하기만 하다.

시간대별로 비행기 한두대 정도 들어오는 작은 공항이라 더 그런 듯.


공항 내부의 Hertz 사무실을 찾아가니 무뚝뚝한 남자 한분이 맞아주신다.


서류에 몇가지 작성하고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기에 한국이라고 답하니 North, South인지 다시 물어본다.

South라고 답하는데,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북한의 김정은 이야기를 하면서 crazy니 어쩌니 하는 단어를 쓴다.

그냥 웃고 지나쳤는데, 순간 기분이 좀 상한 건 왜일까.

아마도 이 먼 나라의 렌트카 직원은 자세한 우리 상황을 잘 모르고 그냥 본인이 대략 아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했겠지만, 비록 체제가 다르기는 하나 같은 동포가 놀림거리가 되는 것이 내게는 언짢았던 모양이다.

어서 빨리 북한의 비핵화랑 개방이 되면 좋으련만.


공항 건물 맞은편 주차장에서 차를 인수.

그냥 키만 달랑 주길래 혹시 차량 사용법을 모를 수 있으니 설명을 좀 해달라고 했더니 직원도 같이 나와서는 친절히 알려준다.

비수기에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데 아마 본인도 좀 무료했던 건 아니었을까, ㅋ

간단히 설명은 들었으나 지난해 여행과는 달리 이번에 받은 푸조 208 자동은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다.

다만 오일이 가득 채워져 있지 않았는데 반납시에도 현재 눈금만큼만 채워서 돌려주면 된다고.

(일부러 증거 사진도 남겼다^^)



렌트카 직원이 알려준 공항 바로 앞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채우고는 하니아로.


하니아로 향하는데 차량 앞면으로 들어오는 경치가 가슴 설레게 한다.

처음에는 하얀 구름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거대한 설산이다. 3월 말인데 아직 눈녹을 때가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숙소 주인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6월까지도 눈이 녹지 않는다고.



우선은 하니아의 보다폰 매장을 찾아갔는데 마침 일요일이라 문을 열지 않는다.

하니아 정도면 그래도 일요일이라도 개장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나마 미리 다운받아온 오프라인 구글맵이 있어 다행.


대신 수퍼에 들러 먹을 것들 미리 좀 사서는 첫 목적지인 키사모스로 향한다.

작은 동네를 거쳐 잠시 일방통행길에 역주행을 할 뻔도 했으나 어쨌든 키사모스에는 무사히 도착.


키사모스에 처음 들린 카페.

볼로스 가기 전 미리 화장실도 해결하고, 에어비앤비 숙소 주인으로부터 온 메시지는 없는지 와이파이를 찾아 잠시 들린 곳.

그리스 첫 카페이다.

도로 옆에 주차하고(키사모스는 작은 도시라 그런지 주차는 되게 후한 편인 듯; 다들 길 옆에 그냥 잠시 주차하고는 볼일 보러 다니는 모양) 들어가보니 실내는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나름 잘 정리된 느낌. 차를 시켰는데 작은 쿠키도 같이 내어준다^^


잠시 휴식을 갖고서는 다시 오늘 첫 목적지인 발로스로.


발로스로 향하는 초입은 이런 올리브 농장 사이를 지나야 한다.

크레타에서는 그래도 꽤 유명한 곳이 아닐까 했는데 안내판도 잘 없고 계속 이 길이 맞나 의문이 들기도.

그래도 구글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따라가본다.


올리브 농장을 지나니 오른쪽에 바다를 끼고 계속 비포장 도로를 달리게 된다.

저 바다 빛깔 좀 보소; 계속 눈은 바다를 향하는데 운전이나 잘 하라는 아내의 핀잔에 다시금 핸들을 바짝 잡기도 여러 차례.


아, 이 길을 트래킹으로 오르는 사람들도 있구나.

도로는 완전 자갈밭으로 돌멩이들이 차 바닥을 할퀴는 소리에 이러다 어디 깨어지지나 않을지 겁이 날 정도. 

속도는 10키로를 잘 넘지 못하고 움푹 패인 곳들을 잘 살펴서 조심조심 올라가야 함.


한 40분 정도 올랐을까, 드디어 탁 트인 공간이 반겨준다; 주차장 도착

가끔씩 맞보는 오프로드 운전은 즐기는 편이지만 이런 바닷가 비탈길을, 돌덩이 피해가며 운전하기는 처음.


주차장에서는 바로 해변이 보이지는 않는다

차를 두고서는 줄곧 왔던 방향으로 조금 더 내려가야.

그런데 이 곳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휘~휘~ 바람 소리도 귓가를 때리고 가만히 서서 온 몸을 활짝 펴기가 힘들 정도.


조심조심 경사길을 내려가니 저 멀리 드디어 발로스 해변이.

휴~

긴 여행에 제대로 눈도 못 붙였던 하루였지만 푸른 해변과 하얀 모래가 만드는 풍광이 나를 보려면 그 정도는 고생을 했어야지 하는 듯.

바닷가로 난 작은 계단들을 위, 아래로 뛰어다니며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는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저 바닷가 아래까지 내려가 모래라도 한 움큼 쥐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사람 손길을 조금이라도 주지 않는 것도 좋지 않을까하며 위로를.


주차장 언덕에서 내려다본 바닷가 풍경들.

바다는 무섭도록 푸르고, 산에는 온통 돌덩이들과 키작은 관목들이 덮고 있다.

왠지 좀 무섭기도 하고, 메마르고 거친 날것의 자연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사진으로는 남기지 못했지만,이런 자갈밭 길을 내려가는데 올라오던 차 한대에서 운전자가 고개를 빼꼼히 내고는 발로스로 아직 멀었냐고 물어본다. 멀지 않다고, 조심하라고 헤어지고는 잊어버렸는데 며칠 후에 하니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ㅎㅎ

그닥 크지 않고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는 장난꾸러기 인상이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국적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염소? 산양? 그냥 방목을 하는 것인지 발로스 오가는 길에 저런 염소(그냥 염소라고 하겠다)를 자주 보게 된다.

대부분 녀석들은 길을 벗어나 비탈을 오가고는 했었는데 이 녀석은 아예 길을 막아선다.

아마도 이런 차들과 사람들에게는 익숙해진 듯.

미안해,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 포기하고 그만 가 보렴~



내려가는 길은 그나마 좀 수월한 것 같기도 하다.

어느새 왔던 길을 거슬러 다음 목적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