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 ['21. 2/10]
아. 읽는 내내 감격과 탄식이 나왔다.
장준하라는 인물의 고귀함에 감탄했고, 나라 잃은 처연함이 생생하게 다가와 탄식했다. 나는 왜 이 글을 이제야 접했는가, 무지했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나라면 결혼 일주일만에 홀로 독립군이 되려고 따뜻한 가정을 포기할 수 있을까.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6천리 여정을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조금도 안주하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정말 이런 분들이 있어 독립이 가능했겠구나 생각이 든다.
어쩌면 무거운 서사 이야기로 생각했으나 읽다보면 서정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장면들로 빨아들인다.
그저 역사책에서만 보고 듣던 독립운동가의 활동들을 내 머리속에서 생생하게 재현되는 듯.
독립운동가를 폄하하던 그 못된 만화가도 반드시 꼭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아래는 나 나름의 요약.
(장준하 선생 27세에서 28세까지의 약 2년간의 이야기이다. 27세! 나는 저 나이에 어떠하였는지!!!)
일본군에서 탈출. 중국군의 도움과, 때로는 온갖 멸시를 받아가며 여러번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겨 마침내 임천의 한국광복군 훈련반에 도착. 3개월간 과정을 수료하는데 총도 없고 교육과정도 별 내용이 없다. 이에 김준엽등 동지들과 스스로 각자의 지식을 나누기 위해 강의도 하고 '등불'이라는 잡지도 만들어본다. 장준하는 급식을 맡아서는 동지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려 고구마를 서리해 오기도 하고, 졸업식 연극을 연출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다. [노하구에서의 공연] 광복군 훈련을 마치고는 훈련학교에 계속 남아달라는 요청을 뿌리치고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으로 가기를 결심한다. 민간인 부부와 여성들도 포함한 5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끌고 이동하지만 추위와 배고픔, 중국 산적, 열악한 환경에 따른 옴과 같은 질병, 그리고 남녀가 함께 생활함에 따른 군기문란같은 갖은 어려움들을 이겨내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일행은 노하구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다시 연극 공연을 하여 그곳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파촉령을 넘어 태극기] 일행들은 험한 파촉령을 넘어 드디어 충칭에 도착한다. [눈물의 바다] 임정 각료들과의 만남에서 장준하는 피끓는 답사를 하고, 모두들 눈물을 쏟아낸다. [자링 청수는 양쯔 탁류로] 임시 정부에서도 당파를 나누어 서로 겨루고만 있는 실태를 본 장준하는 내각 회의에서 이들을 공개적으로 개탄한다. 그러나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장준하와 뜻을 같이 하는 일행들은 잠시 토교라는 곳으로 떠나게 된다. 토교로 가기 위해 자링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맑은 자링강도 결국은 탁한 양쯔강과 합류하는 것을 보고는 당시의 세태와도 같은 것이라 빗대어본다. 잠시 충칭으로 왔던 일행은 그곳에서 이범석 장군을 조우하게 되고 결국 광복군으로의 입대를 결정한다. [8.15 전후] 30명 일행은 서안에 도착하여 군사훈련을 받는다. 김준엽은 그곳에서 만난 민영주 여사와 결혼을 하게되어 장준하가 주례를 맡기도 한다. 훈련 끝에 장준하는 서울에 침투하여 목숨을 건 작전을 맡게되어 떠날 날만을 기다린다. 이범석 장군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삭발까지 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주변을 정리한다.그러던 중 드디어 일본 패망의 소식이 들려온다. [임시정부의 환국] 마침내 상해에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미군 비행기를 통해 그리던 조국땅을 밟는다. 그러나 연합군 통치 아래의 조국에서는 환영 인파도 없이 쓸쓸한 귀국이다. 당시에는 이승만도 국내에 있었고 좌익세력도 함께 공존하며 세력을 다투던 시기였고 미군도 김구 선생 일행의 임시정부를 정식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귀국 방송을 하려고 해도 단 2분으로 시간을 제한하고 문구에 평민의 신분으로 왔음을 넣어라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김구 일행은 각계의 여러 세력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며 새로운 조국을 설계해 나가려 하지만 그 세력들은 제각각 다른 뜻을 가지고 단합되지 않는다. 그러던 사이 결국 외세에 의한 신탁통치가 결정된다. |
아래는 책 속의 문장들.
'창세기 28장 10~15절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 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日軍) 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마침내 나는 그 암호를 사용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 '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어느 지점에 내가 베어야 할 그 '돌베개'가 나를 기다리겠는가?"라고 썼었다. 그 후 나는 '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 땅 2년은 바로 나의 '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받는 '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p12
'내가 가도 산천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가면, 세상은 변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우선 나의 부모와 나의 가족이 대신 치를 것이다. 어둠이 서려오는 차창에, 차례로 거울처럼 부모의 모습과 결혼 2주만에 헤어진 아내의 모습이 지나갔다. 나는 꿈속에서의 대화처럼 하고 싶은 말이 전달되지 않는 답답함을 가지고 괴로워했다.'
...
'면회하러 왔던 아내에게 장차 취할 나의 행동에 대해서 암시를 준 일은 있었다. 중국에 가면 꼭 매주 주말마다 편지를 하마. 만약 그 편지의 끝이 성경 구절로 되어 있으면 그것이 마지막 받는 편지로 알아도 좋을 것이다. 당신이 그 성경 구절을 읽고 있을 땐 이미 나는 일군을 탈출하여 중국군 진영이나 또는 우리 '임정'의 어느 곳으로 들어가 있을 것이다'
-p25
나는 몇 친구들에게 말하여 '잔반불식동맹'까지 만들었다. 일본놈들이 먹다 남긴 밥찌꺼기는 먹지 말자는 이 동맹은 배고파 창자가 뒤틀리는 한이 있어도, 우리의 자존심만은 지켜야 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p27
나에게는 지금 젊음이라는 가장 큰 무기가 있다. 아니 내가 가진 것은 이것뿐이다. 이 무기는 곧 나의 생명이다. 그러나 이 무기도 언젠가는 녹이 슬 것이다. 녹이 슬기 전 나는 이 무기를 조국 광복 전선에서 들 것이다. 이것은 조국이 준, 내가 조국으로부터 받은, 단 하나의 그리고 다시는 받지 못할 무기이다.
-p87
우리는 동경 유학 시절에 이미 충칭에 있는 임정에 대한 정보를 은밀히 들었었고 그 활동 상황을 대개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김구 선생님과 우리 혁명 선배들을 찾아 조국 광복에 몸 바칠 생각은 이 일망 무제의 대륙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한 가닥의 희망이었다. 충칭으로 우리는 지금 가고 있다.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모두 충칭으로 우리 몸을 이끄는 작업이다. 산도 언덕도 보이지 않는, 오직 아득한 지평선만이 가로 놓인 그곳을 향하면서도 '반드시 우리는 충칭에서 독립 지도자를 만나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조국의 아들임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생각은 우리의 등대였다.
-p109
확실히 3개월 동안 임천에서의 체험은 새로운 교훈을 주었다. 그것은 무위에 대한 도전의 철학이었다. 무의미한 일에 지치는 고통은, 나에게 가장 괴로운 고통이란 것을 깨닫게했다. 차라리 대결하자.
-p181
이날 우리는 중국의 첫눈을 만났다. 새털 같은 눈을 뿌렸다. 하늘이 우중충해 지더니, 그 회색의 하늘이 부서져 가루로 흩 날리는 듯 싶었다. 함박눈이 쏟아지고 난 뒤, 해가 퍼지면 눈 위에 윤이 자르르 흐르고 날이 푸근히 풀리는 고향의 겨울이 생각났다. 귀가 시린 것만은 그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고향의 겨울은 언제나 이처럼 매섭고 새침하지는 아니했다.
-p208
나는 밤하늘의 원망을 짓 씹으며 어서 날이 새어 그 밝은 태양이 내 가슴에 떨어지길 빌었다. 이 밤에 우리가 동사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저 떠오르는 정열의 햇덩이를 가슴에 삼키고 이 설원을 가로질러 달려 가리라. 가리라. 가서 또 다시 우리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이 몸에 불을 붙이리라. 그것이 혁명이면 이 붉은 정열을 혁명에 태우리라.
-p248. 충칭으로 가는 길, 파촉령 눈속에서 밤을 새고 얼어죽을 위기는 넘긴 다음날 아침.
그 다음을 이은 김구 선생의 격려사가 가슴을 찔렀다. 거인의 체구가 버티고 서서 완전히 우리를 압도시켰다. 일흔을 바라 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똑똑하였고 인자하였다. 민족의 지도자를 이렇게 가깝게 대한다는 긴장이, 한마디 한마디를 총알처럼 또렷 또렷 경청하게 했다. "오랫동안 해외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국내 소식에 아주 감감합니다. 그동안 일제의 폭정 밑에서 온 국민이 모두 일본인이 된 줄 알고 염려했더니, 그것이 한낱 나의 기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왜놈들에게 항거하여 이렇게 용감하게 탈출해서 이곳까지 찾아와 주었으니 더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나의 지금까지의 착잡하고 헛된 고민이 한꺼번에 사라집니다. 숭엄한 조국의 혼이 살아 있는 하나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결코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 이외에 아무 것으로도 변하지 않는다는 산 증거로서 여러분은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지금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한결같이 일본 사람이 되고자 원할뿐만 아니라 다 되었다고 선전하고 있고 또한 젊은이들은 한국말조차도 할 줄 모른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한국의 혼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스스로 보여주었습니다. 내일은 이곳에 와 있는 전세계 신문기자들에게 이 자리에서 이 산 증거를 알려주고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충칭에 와 있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진정 나의 이 가슴은 터질 것만 같고 이 밤중에라도 여러분을 끌고 이 충칭 거리에서 시위라도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훌륭한 실증이요., 여러분 자신들이 한국의 혼 입니다" 그 인자한 목소리는, 그 억양 속에 한평생의 투지를 울리고 있었다. 말씀이 끝나도 누구 하나 기침 소리도 없이 숙연해 있었다.
내가 답사를 하게 되었다. "저희들은 왜놈들의 통치 아래서 태어 났고, 또 그 밑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국기조차 본 일이 없었던 청년들이었습니다. 어려서는 일장기를 보았지만 무심하였던 것입니다. 철이 들면서부터 저것은 우리나라 기가 아니고 일본 국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조국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우리나라의 국기가 있을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은 의혹의 대상이 되었고, 풀려지지 않는 많은 문제가 저희들을 괴롭혀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기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전국에 나부끼는 것이 일장기가 아니고 우리의 국기라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하고 생각하던 옛 그리움이 이제, 오늘 이 충칭에서 다시 살아나 깊은 감회에 젖게 합니다. 왜놈에 대한 반발과 혐오는 그래도 순수한 것이 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일군에 강제로 끌려 나오게 되고 고국에 남긴 가족들이 폭정에 시달리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저희는 우리들 자신을 다시 생각해야 했습니다. 누구를 위해 이 고생을 하며, 왜 왜놈 상관에게 경례를 붙여야하며, 왜 나의 조국은 사라졌는가 하는 분노가 용암으로 끓어 화산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오후,이 임정 청사에 높이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보고 우리가 안으로 울음을 삼켜가며 눌렀던 감격, 그것 때문에 우리는 6천리를 걸어 왔습니다. 그 태극기에 아무리 경례를 하여도 손이 내려지지를 않고 또 하고 영원히 계속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그토록 고귀한 것인가를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총사령관께서 사열을 받으실 때, 전 정성을 기울여 차렷 자세를 취하였습니다. 왜놈 상관 앞에 차렷을 강요당하던 그 모든 힘을 한데 묶어 아니 그 몇십 배로 늘려 차렷을 하고 마음 속으로 깊이 울었습니다. 아! 우리도 우리의 상관 앞에 참다운 사열을 받고 있구나. 꿈만 같았습니다. 주석 김구 선생님 앞에 선 때엔 더 말할 것이 없었습니다. 진정한 조국의 이미지와 우리의 지휘관과 우리가 몸 바칠 곳을 찾았다는 기쁨 속에 몸을 떨었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아무런 한이 없는 것 같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선배 여러분들의 그 노고에 다소나마 보답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어디든지를 가리지 않고 하라는대로 할 각오를 답사로 드리는 바입니다. "
나는 잠시 나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말을 끊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이 어인 일이냐? 김구 선생과 여러 노인 각료들이 지금 소리없이 울고있는 사실이 갑자기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왜 무슨 일로 저분들이 울고있는 것이냐? 왜, 그다지도 약한 분들이냐? 그러나 실상은 나도 내 목소리가 고르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p273. 눈물의 바다
"가능하다면 이곳을 떠나 다시 일군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번에 일군에 들어간다면 꼭 일군 항공대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일군 항공대에 들어간다면 충칭 폭격을 자원, 이 임정 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습니다. 왜냐구요? 선생님들은 왜놈들에게서 받은 서러움을 다 잊으셨단 말씀입니까? 그 설욕의 뜻이 아직 불타고 있다면 어떻게 임정이 이렇게 네 당, 내 당하고 겨누고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분명히 우리가 이곳을 찾아온 것은 조국을 위한 죽음의 길을 선택하러 온 것이지, 결코 여러분들의 이용물이 되고자해서 이를 악물고 헤매어 온 것은 아닌 것을 말합니다. 이것으로 저의 말을 맺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p287. 장준하가 당파적인 임시정부 요인들 앞에서 한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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