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의 등산가 ['21. 2/14] 김영도
올 겨울 주말이면 산행을 하다보니 점점 산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그냥 산만 탈게 아니라 뭔가 좀 더 깊이 알고 느끼고 싶어 관련 책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작가는 한 때 에베레스트 원정대도 이끌었으나 이제는 연세가 있으셔서 더 이상 등산은 못하시지만 서재에서 책을 읽고 번역 작업도 하신다(그래서 '서재의 등산가'). 그래서 책에서도 세계적인 고산 등반가들의 책들이 자주 언급되고 있고, 관련한 작가의 생각들이 담담하게 서술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제야 동네 뒷산이나 반나절 코스의 만만한 산들만 찾아다니는 내게는 너무 먼 이야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뭐랄까, 건강을 위해 이제 좀 달리기를 시작해볼까 하는 사람에게 철인경기의 고단함과 극한의 순간들을 이야기해본들 잘 와닿기 어려운 것이라고 할지. 나는 그저 산에서 받을 수 있는 잔잔한 느낌과 사고들을 쓴 에세이를 기대했는데 너무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라 낯설음은 어쩔 수 없는 듯.
그리고 문득 내게도 저런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주말마다 자전거에 등산에 아웃도어를 즐기지만 언젠가 나도 서재에 머물 날이 오겠지. 그 때를 대비해 떼울 장작들을 많이 만들어둬야겠다. 요즘 책읽기에 몰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래는 책 속의 문장들과 이번에 새로 알게된 것들.
#산서 목록(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어볼 것)
한국명산기
우리 산이 좋다
산을 바라보다.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마운틴 오디세이
# 비박과 캠핑
- 비박은 ‘Biwak’라는 독일어를 소리 나는 대로 읽은 표현. (temporary encampment under the open sky or in small tents). 캠핑은 예정된 야영.
# 등정주의, 등로주의
- 등정주의는 어떻게든 정상에 오르자는 것, 등로주의는 그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
# 알피니즘(alpinism)
: mountain climbing in the Alps or other high mountains
#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
이탈리아의 등산가.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 14개를 최초로 모두 정복한 인물로, 1980년 산소호흡기 없이 혼자서 등반했다. 많은 산안 관련 서적도 남겼다고.
"주문진 바닷가의 카페 '고독'으로 우리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언젠가 등산 잡지에 실린 짤막한 글 한 토막에 압축된 사연들이 매체가 된 셈이다. 1980년대 초 처음으로 내가 옮긴 라인홀트 메스너의 낭가 파르 바트 단독 등반기 《검은 고독 흰 고독》에 심취한 산 사나이가 훗날 동해안에 카페를 내며 그 이름을 '고독'으로했는데, 그가 지병으로 타계한 뒤 고인의 부인이 외로이 카페를 지키며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산 친구들과 엘크 목장에서 캠핑하며 이 카페에 가곤했다. 때로는 혼자 그곳 테라스에서 비박하며 별과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다. 카페의 에스프레소는 유난히 맛이 좋았으며, 엘크 목장의 목동도 에스프레소를 즐겼다. 그는 나더러 언제라도 목장에 와서 쉬라고 하는데, 귀가 솔깃한 이야기지만 실은 그러기도 쉽지 않다."
- '잊을 수 없는 두 산악인 목동' 中
나는 드디어 산에서 멀어졌다. 마음과 달리 몸이 따르지 않는다. 결국 서재의 등산가가 된 셈이다. 그나마 아파트에서 수락산과 도봉산이 바라다 보인다. 한때 뛰놀던 산을 보며 산과 인생에 대한 주제를 생각한다. 나는 인생을 지식과 체험의 누적 과정으로 보는데 이제는 그런 길을 마음대로 갈 수 없다. 노화는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지금 내 책상머리에는 1940년대 후반 대학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모두 간 지 오래된 그들과 함께 지내던 그 고되면서도 앞을 바라보던 나날이 잊히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내일은 있다' 中
'등산에 “고도보다 태도Attitude more than Altitude”라는 말이 있다. 등산가에게 중요한 것은 정상이 아니라 정상으로 향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다'
'등산에는 정년이 없다는 것이 내 오랜 주장인데, 등산가가 노후를 맞으며 산과 멀어 질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갈 곳이 있다. 서재가 바로 그곳으로, 거기에는 낡은 배낭과 자일, 손때 묻은 피켈과 오래된 취사 도구들. 그리고 등산 250년의 역사가 담긴 선구자의 등반기가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5 금강산편 -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 ['21. 2/14]
금강산 답사기라...
어차피 지금 당장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데 국내 답사기 10권 중 유일하게 남겨둔 터라 명절 연휴를 틈타 읽어보았다.
주로 금강산을 현대 금강호로 다녀갈 수 있었던 2001년 시절의 탐승과 그 전에 별도로 다녀온 탐방을 토대로 지으신 글이다. 금강산은 워낙 어려서부터 '금강산 찾아가자 1만 2천봉~' 하는 노래로부터 각인되다시피 그 명성을 알고는 있었으나 사실 구체적으로는 별 아는 게 없었는데 대략적인 느낌은 받을 수 있다. (물론 교수님의 묘사는 더할 나위 없겠으나 수려한 경관을 직접 보는 감동은 따라가지 못할 듯)
금강산을 읊은 시와 그림이 이렇게나 많은 것도 처음 알게되었다.
지금의 남북 상황을 보면 언제 다시 금강산 관람의 길이 열릴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언제 또 어떤 바람이 불지 모를 것이 남북 관계이니 일말의 기대는 두고 있어야겠다. 그때까지 금강산이 잘 보존되어 있기를. 언젠가 그 날이 오면 다시 한번 이 책을 펼쳐봐야겠다.
아래는 책 속의 문장들.
신계사를 복원하는 것은 남한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연전에 조계종에서 신계사 복원을 위한 스님들의 금강산 탐승이 있었다. 이때 현대측에서는 특별 배려로 스님들이 신계사 터에 들러 예불을 올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법당이 없는 폐사지에서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나무 아미타불"을 외면서 탑돌이를 했다. 그러자 금강산 관리원들은 이 해괴한 행동에 놀라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했고, 규정대로 벌금을 내렸다. 금강산에서 침을 뱉으면 미화 30 달러, 코를 풀면 50 달러, 구호를 보고 비방하면 50 달러 등 규정에 따라 벌금을 가하는데 스님들에게 가한 죄목은 '소란 죄'였다.
"나무 아미타불!"
-p103
효봉 스님 이야기
신계사 개산 이래 수많은 스님들이 주석했지만, 우리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준 스님은 근대 조계종의 거봉인 효봉(1888-1966) 스님이다. 효봉 스님의 속명은 이찬형으로 1888년 평남 양덕군에서 수안 이씨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재능이 뛰어 났는데 평양 고등 보통 학교를 마치고는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귀국 후 그는 당시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고등 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어 서울 지방법원, 함흥 지방 법원에서 근무하고 30 대 중반엔 평양 복심 법원 판사가 되었다. 법관 생활 10 년째되던 해 그는 재판과정에서 한 조선인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에 회의를 느끼고 마침내 법복을 벗고 무작정 집을 떠나 엿장수 생활을 했다. 엿 모판을 짊어지고 3 년째 방랑 생활을 하던 그는 1925년, 38세의 나이에 금강산 신계사의 조실(참선을 지도하는 승려)로 있던 석두 임보택 스님에게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
효봉 스님은 많은 제자를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 수제자로는 이미 열반에 든 송광사 구산 스님, 우리가 잘 아는 법정 스님이 있다. 그리고 효봉의 제자 중 일초라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이 바로 환속하여 시인으로 우리에게 나타난 고은 선생이시다.
-p104
금강산에 와서 내가 건축적으로 가장 감동을 받은 것은 산길이었다. 옥류동이건 내금강이건 만물상이건 밟고 오르는 길에 돌로 포장한 박석길을 보면 돌 하나 하나의 선택과 시공에 온갖 정성을 다해 아름다 움이 넘쳐 흐른다. 넓적한 돌로 다듬은 길도, 작은 돌을 이어 붙인 오솔길도 어느 것 하나 금강산의 자연을 해치지 않았다. 로마와 빠리에서 거리에 깔린 돌들을 보면 우리는 놀라움과 부러움 속에서 발길을 옮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돌길보다도 더 멋있는 것이 금강산의 박석길이다.
-p175
그리고 다시 만상정 주차장에 내려 오니 관리원 동무는 전에 없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만물상 멋있었죠?" "아뇨, 우리는 못 보았는데요." "못 봤어요? 나는 여기서 천선대를 훤히 올려다 보았는데요?" "우리가 절부암까지 갔을 때 구름이 내려와 덮쳐 버렸는데요. 그러면 구름이 다시 또 올라 간단 말입니까?" "아니, 그것도 모른단 말입니까? 아, 축구공이 내려 오면 또 올라가는 것도 모릅니 까?"
축구공 얘기가 여기에 맞든 안 맞든 그는 자연의 원리를 자기 경험으로 그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금강산 날씨에 대한 관리원 동무의 예지력은 이처럼 '사람이기 이전에 사람을 앞지른 초감각의 짐승'이었다. 그는 비록 다른 일에 있어서는 남들이 아둔하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산을 지키고 금강산을 관리하면서 금강산과 더불어 호흡하는 일에서는 그를 능가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시 그런 사람을 귀하게 생각한다. 그는 이미 8년째 금강산을 지켜왔다고 한다.
-p197
옛 기행문을 보면 금강산을 떠나는 사람의 행낭속에는 대개 앞사람의 기행문인 와유록 ('와유'란 방 안에 누워서 산천을 유람한다는 뜻이다) 한권과 당시집 서너권을 꼭 함께 챙겨 넣었다고한다. 짐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도 길라잡이 책과 시를 짓기 위한 참고서 한 권씩 만은 반드시 지니고 다닌 것이다.
-p307
이것은 서울-금강산간 기차가 여섯 시간 반 걸린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두 시간 정도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니, 언젠가 육로로 금강산 가는 길이 열리면 서울에서 새벽에 떠나 내금강 만폭동 코스를 두루보고 그날 밤에 되돌아 오는 당일 코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려 본다.
-p384
사랑이 번지는 곳. 불가리아 ['21. 2/13]
올해는 해외여행이 가능할까? 꼭 올해가 아니더라도 조만간 그런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까.
다시 슬슬 여행지 책들을 보기로 한다. 가성비 좋은 동유럽권이 궁금한데 생각보다는 소개하는 책들이 별로 없는 듯.
'ooo번지는 곳' 시리즈 중에 불가리아 편이다.
사진이 많고 간간이 여정 중의 에피소드나 느낌들도 있다. 한 나라를 전반적으로 소개하기보다는 몇군데 정해서 그곳에서의 소회들을 들려준다.
* 이 시리즈에 펜화같은 그림을 그리신 분이 누군지 궁금하다, 참 부러운 재능을 가지신 듯.
아래는 소개된 장소들 요약 소개
1. Sofia
북쪽으로는 발칸 산맥, 남쪽으로는 비코샤 산, 서쪽으로는 류린산이 우뚝 솟아있는 고원(550m) 도시로 공원과 녹지가 많은 '녹색의 도시'소피아는 불가리아의 수도이며 7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 당시의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소피아'는 고대 그리스어로 지혜를 뜻하는 말이다.
2. 릴라 수도원 Rila monastery
10 세기에 세워진 발칸 반도 최대의 수도원으로 오스만 터키의 지배 아래 유일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불가리아 종교 및 문화의 본거지다.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수도원으로 1983년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곳이다. 릴라 수도원이 지금의 모습으로 갖춰진 것은 14세기 경으로 360여 개의 방에 수도승이 모여 수도와 학업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3. Veliko Turnovo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에서 동쪽으로 240km 떨어진 얀트라 강 상류에 위치한 도시. 벨리꼬 투르노보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옛 불가리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슬라브 문화의 중심지로 '불가리아의 아테네'라 불렸던 곳이다.
4. Flovdiv
소피아 남동쪽 125km 지점 트라키아 평원 한가운데에 위치한 플로브디프는 불가리아 제 2의 도시다. 이곳은 로마인들에게는 세 개의 언덕이라는 뜻의 트리몬티움으로, 터키인들에게는 필리베라는 지명으로 불려진 곳으로, 거리 곳곳에 각 시대의 영항을 받은 건축물과 유적이 남아있다.
* 발칸반도가 어딘지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야 찾아보게 되었다.
대략 아래 동유럽 국가들이 위치한 곳을 통털어 일컫는 듯.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반도보다는 훨씬 크다. 그리스 정도는 반도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그냥 발칸지역 정도로 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괜한 호기심에 군대 무기인 발칸포와도 인연이 있나 찾아보았더니 그건 아니다. 발칸 반도의 발칸은 Balkans 이지만, 발칸포는 vulcan이고 어원은 로마 신화의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의 영어 명칭 벌컨(Vulcan)에서 온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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